1

셜록, 불쌍한 셜록

사괏 2017. 3. 23. 14:33




시즌4 보기 전까진 그래도 셜록이 존을 사랑하고 욕망하는 단계까지는 간 줄 알았는데 403 보고 나니... 욕망이 다 뭐야, 얘는 존에 대한 자신의 감정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도 알동말동인데. 그렇다고 존에 대해 아무 감정이 없었다는 건 아니고 오히려 시즌 3는 존을 붙잡기 위한 다급하고 절박한 셜록의 몸부림 그 자체였지만 셜록은 빅터 트레버 사건으로 심리적 성장이 멈추어 있는 어린 아이였다는 거다. 


메리 대단해. 그동안 쭉 셜록을 봐온 존이나 나도 보지 못했던 셜록을 한눈에 꿰뚫어 봤구나. 인간본성이라는 단어가 딱 와닿지 않아서 그때는 몰랐는데 결국 이거였잖아. 

'이야 너 진짜 지금 존이 어떤 심정인지 전혀 모르는구나. 일부러 열받게 만들려는 게 아니라 정말로 암것도 모르고 이러는 거구나.' 

셜록을 간파한 메리는 그래서 어른이 정신없이 까부는 어린애나 강아지를 보듯 그렇게 셜록을 보고 빙긋 웃으며 마음에 든다고 했던 거고. 


근데 진짜 셜록은 빅터 이후로는 친한 친구가 없었나봐(눙물)... 그게 아니면 존의 심정을 짐작하지 못하고 난동부린 셜록이 설명이 안 된다. 커가며 얼굴 알고 몇 마디 대화 나누는 102의 세바스찬 같은 동창은 있었겠지만 이죽대고 빈정거리는 태도를 봐선 절대 셜록과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던 것 같고... 친구를 사귀려는 시도는 해봤지만 마이크로프트 외에 모두 멍청한 금붕어들임을 알고서 그 이후로는 신경쓰지 않았다는 얘기가 301의 둘의 대화에서 나온다. 그리고 셜록이 빅터로 인해 큰 충격을 받은 이후 마이크로프트가 의도적으로 다른 친구를 사귀는 것을 막고 외부를 차단하며(뒷조사 하고 겁주면서) 지속적으로 경고하고 세뇌시킨 영향도 컸을 것이다.


그러니 셜록은 성장기에 친구를 사귀면서 친밀감을 쌓아가는, 싸우기도 하고 화해하는 평범한 사회화와 인간화의 과정을 제대로 겪어보지 못했고 그런 셜록으로서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마음 헤아리는 것도 당연히 서툴고 피상적일 수밖에 없지. 그러면 재닌과의 관계가 순조롭다고 대꾸하고는 당연히 책에서 인용한 거라고 쏘아붙였던 셜록의 말이 농담이 아니었나...? 진심이었어.........? .....그랬어?...........


빅터 이후로 셜록에게 제대로 마음 터놓고 친하게 지낸 친구가 없었고 빅터로 인해 억누른 의식 깊은 곳의 트라우마와 두려움까지 가지고 있었을 셜록은 동년배와의 인간관계에서는 면역력이 하나도 없는 취약한 상태였겠지. 그런 셜록에게 30여년(!!!!!!!!!!!!!) 만에 생긴 친구 존은 마이크로프트 눈에 보균자 금붕어인간으로 보였겠다ㅋㅋㅋㅋ 그래서 마이크로프트는 셜록에게 레드비어드를 수시로 상기시키며 동생을 철저히 보호하고 관리하며 감시해왔나 보다. 마이크로프트에게 셜록은 마그누센을 쏜 그 순간만이 아니라 언제나 몸만 훌쩍 큰 어린애였겠지. 아휴 이렇게 생각하니 큰 형님도 짠내나네ㅠㅠ





셜록과 존 둘의 관계에서는 언제나 존이 충직한 군견, 코기존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사실 진짜 친구 좋아하는 똥강아지는 셜록이었는지도 모른다.

겉으로는 오만하고 도도한 얼굴이었지만 속으로는 존이랑은 뭘 해도 다 조음 짱조음의 내적흥분상태였을 셜록ㅋㅋㅋ

늘 혼자 사건 수사하다가 존이랑 같이 다니니 짱 재미쪙^0^ 

그동안 다른 사람들에게는 시기와 몰이해만 받고 비아냥만 들었는데 존은 나를 인정하고 칭찬해주니 짱 기분좋아^0^ 

멍청한 금붕어인간들이랑은 다르게 말도 잘 통하고 총도 잘 쏘고 싸움도 잘 하는 존 짱좋아^0^ 

그런 존을 2년 만에 만났으니 얼마나 반가웠겠어. 그래서 정신 없이 꼬리 흔들며 빨리 같이 놀자고 왘왘 달려드는 똥강아지 셜록홈즈였던 거지. 그렇게 생각하면 301에서 유독 덜떨어져 보이던 캐붕 셜록의 모습이 납득이 간다.



그리고 사건은 안중에도 없이 존 결혼식 준비에만 몰두하면서도 메리 말대로 불안해하던 셜록이나 존을 만나지 못한 동안 사건 핑계로 약을 한 셜록, 존 때문에 죽었다 살아난 셜록, 메리를 용서하는 셜록 등등 셜록의 미친 기행(!)은 계속 이어지지만 존의 의자를 치워버린 셜록은 대체... 이걸 어떻게 봐야 함? 행색은 꼬질꼬질 그지꼴을 해가지고 한층 더 불쌍하게 자기 의자에 비좁게 몸을 구겨 누워서는 불퉁하게 부엌이 안 보여서 치워버렸다는데 왜 내 눈에는 네가 나빴어 울먹울먹힝힝 삐죽대는 모습으로 보일까. 

야 3n살 먹은 셜록홈즈야 너 대체 왜 그러냐 응? 나이도 먹을 만큼 먹고 머리도 좋은 인간이 402때도 그렇고 독립적으로 자기 삶을 의연하게 살아갈 생각은 왜 조금도 안 하냐? 응? 


여기까지 생각하고나니 존에게 있어 셜록처럼 셜록에게 존도 단 하나뿐인 소듕한 존재인 건 좋은데 서로의 소중함 알자고 존과 셜록 둘다 이렇게까지 외롭고 고립된 삶을 살아야만 했을까 싶고ㅜㅜ 실제 셜록의 성장기는 나의 망상과 궁예질보다는 행복하게 보냈으면 좋겠다. 원작에서는 빅터 트레버가 셜록이 성인이 돼서 사귄 친구고 다른 친구들도 여럿 있었다고 봤는데 비비씨 셜록에게는 진짜 빅터나 존만큼의 유대를 나눈 친구가 아무도 없었을까? 정말 아무도ㅠㅠ? 


어쨌거나 유년시절의 트라우마와 그 충격을 감당하기 위해 스스로 만들어낸 방어기제에 마이크로프트의 지속적인 훈육으로 만들어진 것이 시즌1,2에서 본 셜록이었다. 301의 마지막 장면에서 셜록홈즈가 될 시간이라며 쓰는 디어스토커 모자는 셜록이 자신의 본성이라 믿으며 만들어온 (시즌 1,2의) 자아이자 미디어에서 보는 대외적 자아를 상징하고. 그걸 남김없이 모조리 개발살내고 부수어 인간 셜록 만들어줘서 몹티스 양반들아 으즈므니 그믑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