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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2

셜록은 자신이 돌아온 날 저지른 실수가 얼마나 큰 것인지 알까.

 

어쩌면 이건 내가 뒤끝있고 꽁한 인간이라 그럴지도 모른다.


나 같았으면,

1. 레스토랑에서의 뒷목잡는 대환장쇼
2. 두번째로 옮긴 음식점에서 여전히 핀트를 못 맞추고 과거 제가 하던 대로 추론이나 줄줄 읊어대려는 모습
3. 세번째 음식점에서는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버럭 소리까지 지르고,
4. 도무지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선을 넘어 어이가 탈출해버린 존에게 슬쩍 구슬리듯 아무렇지 않게 옛날로 돌아가자며 능글대기까지

 

게다가 존이 셜록에게 마음이 있었고 셜록도 그걸 알고 있었으며 그로 인해 2년 간을 미망인이나 다름없이 산 존이었다. 그러니 자신이 이런 새끼를 사랑했었나 싶은 강한 현타를 느낄 것 같다.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뒷통수를 맞은 듯한 존나게 강한 현타. 

 

비록 셜록 없는 2년간 혼이 나간 껍데기 같은 상태로 살았던 존이지만 셜록이 돌아온 날 저지른 행태만으로도 천년의 사랑이 단숨에 식었겠지. 집으로 돌아와 메리 옆에 누워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셜록새기 살아 있었어->그 동안 내가 그 새기를 얼마나...->근데 셜록새기 살아 있었어->그 동안 내가... 의 생각의 무한루프를 돌다가 날이 밝고 이렇게 결론을 내리지 않았을까.

셜록새기 살아 있었고 그 동안 셜록을 사랑의 대상으로 보고 가졌던 감정들은 모두 자기 혼자만의 처참한 헛다리였구나.

 

그러니 존에게 이제 셜록은 마이크 스탬포드를 통해 소개받은 괴짜 친구일 뿐이고 셜록 덕택에 존은 (헤테로남으로) 확실히 move on 하게 된 거다.

 

그런데도 셜록은 301의 마지막까지 완전히 솔직해지지 못하고 장난을 빙자해 존에게 정말 하고 싶었던 용서를 빌지만...가뜩이나 신뢰문제가 있었던 존의 마음은 이쯤되면 이미 걸레조각처럼 너덜너덜해졌을 것 같고. 초인적인 인내와 체념으로 셜록놈 머리 좋지만 정서적으로 모자란 감정고자 자식이라고 넘어가겠지. 그리고 다시 한번 자신이 저런 놈한테 뭘 기대한건지 스스로를 자책하며 셜록과의 연애전선에서 완전히 방을 빼고 철수.      

 

그러니 302 내내 미련 뚝뚝 떨어지는 셜록에 비해 베스트맨 요청에서나 결혼식 준비기간과 결혼식 동안 존의 태도는 앗쌀하기 그지 없다. 우린 런던을 뛰고 뒹굴며 신나게 범죄자 잡는 존나 친구, 존나 우정인데 뭐.

 

총각파티에서 셜록의 무릎 잡으며 존이 중얼거리던 I don't mind도 진짜 문자 그대로 좆도 신경 안쓴다는 뜻이었을지도. 103의 둘만 있었던 수영장에서도, 203의 경찰에 쫓기는 긴박한 상황에서도 사람들이 떠들어댈 거라고 혼자 신경 쓰며 도둑이 제발 저렸던 존왓슨은 이제는 완벽한 헤테로남이 되어 친구의 무릎을 잡든 손을 잡든 암치도 않어.

 

그래서 셜록에게 댄스 레슨을 받은 것을 두고 메리에게 커플드립을 하며 낄낄거리고 뒤늦게 자신의 마음을 깨달은 셜록이 회한과 미련 가득한 눈빛으로 존을 쳐다볼 때도 존은 마주 아련해지지 않고 그런 셜록에 조금 놀라고 머쓱할 뿐이다.

 

결혼식에서 셜록의 연설을 들으며 흘린 존의 눈물도 내가 보기엔,
마냥 감정고자 애새끼인 줄만 알았는데 우리 셜록이 달라졌어요!의 감격과 기특함의 눈물로 보이고. 

 

302의 존은 셜록에게 그런 쪽으로 기대를 접고 마음을 닫은 후로 덤덤하고 무심한 헤테로 라이프를 보내고 셜록은 왁자지껄한 축제 분위기에서 혼자 코트 둘러입고 떠나며 늦깎이 지지리궁상 짝사랑의 정점을 찍는다.

아 안 행보케... 이건 앵스트도 뭣도 아냐. 슬프거나 가슴 저미지도 않고 그냥 불행해지는 느낌만 들어..

 

 

 

픽에서처럼 진심으로 사죄하고 존에게 용서를 구했다면 얘기는 달라졌겠지만 저게 셜록이고, 그래서 셜록은 존사랑에 눈을 떠 처절하게 존바보, 존닦개, 존성애자가 되었읍니다... 쓰면서 또 다시 느끼지만 시즌3 참 안 행복하고 재미가 없네. 서로가 서로에게 소중하고 애틋하지 못 하니 지켜보는 내 마음도 식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