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의 폐공장에서 애들러와의 대화.
애들러는 셜록과 존이 커플이라고 했고 존이 셜록을 사랑한다고 했다. 셜록은 그 대화를 들었고 돌아온 후 그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셜록과 존이 서로에게 감정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전제, 혹은 존이 셜록에게 감정이 있다는 것을 둘다 알고 있다는 전제에서 301의 셜록에 대해 생각한다.
셜록은 관계에 서툴렀고 감정은 약점이라고도 생각했다. 201에서 서로의 마음을 알았다고 해도 셜록은 셜록이고 존 역시 셜록은 셜록이니까 라고 생각하며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지속되어 온 것. 그렇다면 라이헨바흐 이후 존의 심경은 얼마나 후회와 고통으로 가득 찼을까. 실험실에서 셜록에게 했던 말들이 존의 가슴에 그대로 비수로 꽂혔을 것이고 셜록이 자신을 사랑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시작도 하지 못한 사랑이 뼈아프게 후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서 다시 본 301의 셜록을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존은 자신이 철저히 농락당했고 셜록을 확실한 소시오패스라고 여기며 내내 후회와 아쉬움으로 열어뒀던 마음을 그날 확실하게 닫았겠지. 셜록에게 있어 사랑은 아주 조금의 여지도 없다고.
그리고 셜록.
감동적인 재회를 할 거라고 확신했다. 이후의 레 경감이 그랬듯이.
존이 221b에 계속 살고 있었다면 천연덕스럽게 자신의 의자에 앉아 존을 기다리고 있었을 수도 있고. 그런데 존과의 재회의 장소가 메리에게 청혼하는 레스토랑이었고 2년 만에 보는 존이 반갑고 긴장되는데다 주체할 수 없는 흥분으로 그런 모습에 그런 상황을 맞고 만 것이다.
셜록에게 존 같은 사람은 없지. 존이 셜록에 대해 가지는 감정의 무게만큼은 아닐지 몰라도 셜록에게도 존은 소중하고 유일한 존재였다. 그런 존이 결혼을 하려 하고 자신이 없는 삶을 살아나가고 있었고. 그러니 돌아올 곳을 잃은 느낌이었겠지. 셜록에게 집은, 런던은 존이 당연히 있어야 하는 곳인데.
셜록에게 존이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을까.
셜록의 일과 존, 301 초반에는 넉넉잡아 7:3이라도 될까 싶은데 303에서는 완전히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셜록에게는 존이 전부가 됐다.
이 과정이 잘 이해가 안 간다. 301은 셜록홈즈의 액션활극으로 보였으니까.
화면과 캐릭터가 따로 놀고 이야기 전개와 인물의 속마음은 별개로 진행된다.
존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걸 깨달은 셜록의 마음은 어땠을까. 무슨 일이 있어도 존은 항상 자신을 이해해주고 함께 하는 존재였는데, 집과 같았는데 2년 만에 돌아와 보니 집이 사라져 있고 코피가 난 채로 터덜터덜 걸어가는 셜록의 마음은 어땠을까.
자신이 뭘 잘못했지? 마이크로프트의 말이 맞았다.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코웃음 쳤는데 마이크로프트가 옳았다.
존에게 감동적인 포옹을 받고 싶었을 것이다. 존에게 해줄 얘기도 아주 많고 2년치의 찬사도 듣고 싶었을 테다.
존은 아예 자신을 무시하고 가버렸다. 당시의 셜록은 존의 감정, 배신감과 상처를 헤아리기 힘들었을 것이다. 셜록은 얼떨떨하고 외롭고 충격을 받은 채로 221b로 돌아와 차를 끓이고 늦은 저녁을 먹는다. 자신은 어째서 그렇게도 존을 몰랐을까. 무릎을 꿇고 빌어도 모자랄 판에 흥분에 들떠 까불어댄 스스로가 바보천치처럼 느껴질 거다.
Two years, Sherlock. Two years. You let me grieve.
계속 곱씹겠지. 존과 자신은 예전처럼 런던을 뛰어다니며 이제는 어떤 위협도 없이 2년 전과 똑같이 지낼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셜록의 2년은 쉽지 않았고 혼자서 힘들게 세상과 상대해왔다. 드디어 모든 문제를 해결했고 어려운 과제를 해낸 만큼 포상 같은 일상을 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발밑이 사라진 듯이 느껴지겠지. 상처로 인상을 찌푸리며 샤워를 하고 나와 의자에 앉아 생각한다. 존과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존은 자신 없는 삶을 살아왔고 자신에게 그렇게 분노하며 셜록을 무시하고 자리를 떠버렸으니까 이제 셜록으로서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만약 셜록이 그때 비로소 존의 입장에서 제대로 생각해봤다면...
셜록은 셜록답게 먹잇감이 보이면 그것 하나에만 집중하는 맹수처럼 모리아티 조직 해체에만 집중했고 처음에는 흥미로웠을지도 모르겠다. 매니 해피 리턴즈에서는 그런 여유가 있었던 것도 같다. 그러다가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세르비아에 잠입해 도망다니고 머리는 산발이 되어가지고 고문당하고.
존도 힘들기는 했겠지. 그러나 자기도 죽다 살아났으니까 그렇게 피상적으로 생각하며 서로가 고생한 것으로 퉁치려 했는지도 모른다. 존의 세계가 어떻게 무너졌는지, 존이 얼마나 고통받았는지를 안다면 아무렇지 않은 척 나타나 그런 식으로 모두를 놀래키려 들지 않았겠지. 허드슨 부인, 몰리, 레 경감에게 했듯 갑자기 나타나 놀라고 기겁하는 반응을 보고 싶었던 거지. 당연히 셜록도 존을 그리워했지만 그런 재회의 방식이 존에게는 상처가 된다는 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셜록은 존의 비탄과 상실, 후회와 고통에 대해서는 깊이 파고들지 않았다. 별로 사려깊지 않았다. 마이크로프트 사무실에서 나눈 대화에서부터 그게 드러난다. 나는 그들을 살렸고 그들은 나를 사랑하며 깜짝 놀라긴 하겠지만 반갑게 맞아주겠지.
셜록이 존에 대해 특별한 감정을 가지고 있거나 존의 마음을 알고 있다면 그것이 더욱 면죄부로 작용했을지도.
존은 날 사랑하고 잘 아니까 이런 날 이해해줄 거야. 그리고 난 널 살리기 위해 애썼어.
근데 존은 들으려 하지 않았다. 분노하고 심각하게 충격과 상처를 받고 셜록의 입을 틀어막듯 셜록의 코를 박아버리고 더는 셜록에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인사도 없이 메리와 떠나 버렸다. 이런 모습의 존은 처음이다. 셜록을 완전히 닫아버리고 무시하는 존은 처음 봤다. 그것도 2년 만의 첫 만남인데.
그래서 셜록은 처음에는 당황하고 머쓱했고 지나고 생각할수록 아무 생각 없이 수선을 떤 자신이 머저리처럼 느껴졌을 거다. 두고두고 떠올릴수록 뼈아픈 패착으로.
2년 동안 간과한 존의 고통에 더해 오늘의 자신은 존의 고통을 웃음거리로 삼았으니까. 그래서 스스로도 용서가 안 되지 않았을까. 그렇게 셜록은 한참을 자신의 의자에 앉아 있다 온기 없는 침대로 비척비척 걸어가 잠을 청했겠지. 머리도 아프고 코도 아팠을 테니까.
그랬기 때문에 존에게도 먼저 연락하지 않은 것.
직접 마주한 존의 고통과 상처는 셜록이 감당하기에 너무 컸고 그래서 더욱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서.